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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호주에서의 크리스마스, 그래서 결국은 이 남자랑... 일상 everyday

와.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라는 말의 강도가 이렇게 센 지 몰랐다. 방금 들어왔는데 어제까지 그렇게도 북적대던 도시 전체가 조~용. 시티는 아예 세븐일레븐 빼고는 죽었고, 차이나 타운 마저 몇몇 식당 빼고는 다 문을 닫았다. 와. 어디 술집 한군데 문 연 곳이 없다. 어제(크리스마스 이브)는 가게들이 열두시까지 문을 여는 일년 중 거의 유일한 날이라고 한다. 평소엔 웬만한 샵은 5~6시, 대형 슈퍼들도 늦어도 아홉시면 문을 닫는 걸 고려하면 밤 열두시는 엄청난 거다.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백화점을 포함한 모든 샵이 대대적인 할인에 들어가는데, 크리스마스 이브 날 밤 부터 슬슬 가게 정리를 들어가면서 가격을 다운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날은 문을 닫고, 그 다음날부터는 피터지는 쇼핑 전쟁;; 그만큼 싸다고 한다. 어쨌든, 크리스마스 당일은 짤없다. 무조건 가족과 함께.

직장은 대부분 12월 24일부터 1월 2일까지 (호주는 25, 26일 이틀이 공휴일) 쉬더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때 휴가를 낸다. 회사가 문을 닫아서 강제로 휴가를 써야하는 곳도 있다고. Tia랑 Diane, Kam은 스윙 페스티벌 때 쓰려고 휴가 안 써서 공휴일 빼고는 다 출근한다는데, 24일의 경우엔 다들 평소보다 일찍(오후 1시~3시 쯤) 끝나는 모양이었다.

어제 저녁에는 Tia랑 Bec이랑 우리집에서 간단한 파티를 했다. 워낙 급하게 준비를 해서 사람은 몇 없었는데(Tia, Bec, Kat, Ross, Keiran, 나), 내 노트북을 X box 스피커에 연결해서 우리끼리 스윙 음악 틀어놓고, 한 쪽에선 춤 추고 (우리집이 플로어가 나무 바닥인데 춤추기 딱 좋다-.-v), 한 쪽에선 수다, 한 쪽에선 간식 냠냠. 참 좋았다.
트리 장신구 하나 없는 집에서 몸소 트리가 되어준 Keiran
도리토스, 살사, 사워크림의 조화란! 나머지 하나는 딥(시금치+잣).
나초도 만들고... 아무렇게나 얹은 아보카도 -ㅅ-

파티가 끝나고 친구들이 다 돌아간 시간은 12시 쯤. Tia랑 둘이 앉아서 엑스박스로 Sex and the city를 봤다. 식어버린 나초를 데우고, 그만 먹어야 되는데를 중얼거리면서 둘이 남은 걸 뚝딱. 마주보고 낄낄대기도 하고, 말없이 침만 꿀꺽 삼키기도 하면서 에피소드 4개를 내리 해치운 후에야 자러 갔다. 음, 나름 만족스런 크리스마스 이브였어, 하면서.

크리스마스인 오늘은 점심에 Bec네 집에 점심 초대를 받아서 다녀왔다. Bec은 언니 Emma랑 언니 남자친구 Austin이랑 같이 사는데, 오늘 점심은 Bec, Emma, Bec 아빠, 그리고 Austin, Austin 아빠. 그러니까 이게 참 사적이고 가족들만의 행사라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더라는. 그렇다고 뻘쭘했다거나 한 건 아닌데,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라는 말의 강도를 다시한번 느꼈달까. 그러니까.. 여기는 스무살이 넘어서 독립을 하면(대부분이 한다) 부모님이 우리로 치면 친척처럼 멀어진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오랜만에 '엄마아빠를 만나는 날' 이 되는 셈. '가족과 함께'라는 말은 '부모님 얼굴 보는 날' 쯤이 되겠다. 평소에 얼마나 부모님 얼굴을 안 보고 사는 지도 말해준다는. 특별히 대가족이 아닌 이상 그 이외의 친척까지 챙겨가며 만나지는 않는 듯 했다. 크리스마스가 이 정도로 사적인 가족모임인 줄 몰라서 그냥 다른 파티 초대받을 때랑 별 다르게 생각 안했었는데, 어느 순간 가족이 없으니 혼자 있겠다며 초대해준 게 엄청나게 고마워졌다. 점심 메뉴는 샐러드, 콜슬로, 구운 야채, 바베큐(구운 고기). 그냥 제일 평범한 호주식 디너 메뉴. 그리고 디저트로...
트라이플 Trifle

영국식 디저트 트라이플! 프랜즈에서 레이첼이 만들다 망친 그 트라이플! 실제로 먹어 본 적은 없었는데 왠지 상상하기로 형체가 있는 무스케익 같은 걸로 예상했다. 근데 오히려 흐물흐물 한 푸딩 같은 느낌. 젤리, 과일, 술에 적신 스폰지케익이 커스터드에 잠겨있다. 술 먹은 스폰지케익이 어찌나 독한지 이거 먹고 바로 뻗어서 두시간넘게 잤다는 -_-;;;
코알라인형. Bec의 크리스마스 선물.

캥거루나 코알라 인형이 제일 쓸데 없는 선물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인형 받고 엄청 좋아했다. 묘하게 정이 가는 얼굴. 예전 같으면 아마 본인 모르게 몰래 버렸을지도 모르는데, 이 인형은 왠지 마음에 들어서 데리고 다닐 듯 하다. 저 껄렁한 부직포 모자와 조끼, 어설프게 달린 코르크. 히히. 맘에 들어.

집에 오니 6시. 의외로 다니엘도 티아도 집에 벌써 와 있더라. 망고를 하나 먹고, (티아가 10달러 주고 망고를 한박스를 사와서 요즘 망고 원없이 먹고 있다;; 아무리 떨이여도 완죤 싸 +_+) 발보아 후기나 써야지, 하고 찬찬히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문자가 왔다.
크리스차~안~ 그 새 얼굴이 탔어~

MLX의 그 스위스 꽃미남 Christian. 멜번에서 타즈매니아로, 타즈매니아에서 케언즈로 갔는데 케언즈가 너무 싫어서 후딱 딴 데로 가고 싶은데 티켓이 남은 게 브리즈번 행밖에 없어서 일단 날라 왔댄다. 백팩에 있는데 크리스마스라 근처에 문 연 데가 없어서 심심하다고. 하하하. 백팩커 주소를 보니 마침 차이나 타운 근처. 차이나 타운에는 분명히 문 연데가 있겠지, 하는 마음에 내가 그쪽으로 갈게, 했다. 가는 길에 본 도시는 완전 조용~했고, 차이나타운은 몇몇 식당이 열려 있었다. 내가 그 쪽으로 가길 정말 잘 했다.

도착해서 Christian에게 전화를 하고 내려오길 기다리며 백팩을 둘러보는데, 하하하, 이왕 타지에 있다면 타지 사람들끼리의 모여 있는 백팩도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괜찮은 곳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팩은 언제나 백팩이다. 정처 없고 외로운 영혼들의 안식처랄까. 나중에 Christian이 그러는데, 원래 평소처럼 호텔로 가려다가(이 사람은 나처럼 돈 없는 여행객이 아니라 휴가 온 사장님이니깐 ㅠㅠ) 크리스마스 날 호텔에서 혼자 있으면 우울할 것 같아서 사람이라도 북적대는 백팩을 선택했다고.

저녁은? 물었더니 대강 때웠어, 하길래 나도, 하고 먹을 곳부터 찾았다. 문 연 곳은 중국 식당, 베트남 식당, 한국 식당. (그중에 제일 늦게까지 여는 곳은 한국 식당이었다. 오늘은 새벽 1시까지 연다고 써있더라. 의지의 한국인-_-!) 베트남 식당에서 간단하게 국수를 먹고,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실 곳은 문 연 곳이 하.나.도. 없어서,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Christian은 말이 많아서 좋다. 하하하.

스위스라는 나라는 바다가 없어서 열 여덟살 때 바다를 처음 봤다고 한다. 호주에서 제일 좋고 봐도봐도 더 보고싶은 게 자연이라고. 바다도 좋고 산도 좋고.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하고 삼면이 바다인 게 좋기는 좋은 거구나 싶다.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강도 있고, 비도 있고, 눈도 있고. (브리즈번이 고향인 애들은 대부분 눈을 실제로 본 적이 없다.)

첫사랑 얘기, 두번째 사랑 얘기, 세번째 사랑 얘기, (...중략. 첫사랑은 열일곱, 지금 서른일곱이니 중략이 길다ㅋ) 지금 애인 얘기, MLX 때 만난 사람들 얘기 등등, 자기 얘기를 하면서도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묘한 대화법을 가진 Christian. 앗 이제 너 얘기 좀 듣자, 해 놓고 질문만으로도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한다. 이건 Christian 때문이기도 한데, 나 때문이기도 하다. 질문은 간단한데 대답은 간단하지 않은, 그런 질문들이 많아서. 그리고 내가 요즘 좀 그렇다. 나에 대해 뭘 물으면 대답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아는 사람은 아는 내 버릇. 가볍게 툭 던진 질문에 한참 생각하다 질문한 사람이 '씹혔구나-_-' 하고 단념할 때 쯤 엉거주춤한 대답을 내 놓는. 덕분에 피하려고만 했던 질문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음, 덕분에 정리가 된 생각들도 있다. 생각해보니 나한테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군!

그래서 결론은 여태 길바닥에서 외간 남자랑 놀다 들어왔다는 (..)

개인적으로 의미를 찾자면 교회 밖에서 보낸 첫 크리스마스였다. 작년까진 별 생각없이 교회에 갔는데, 앞으론 별로 그럴 마음이 안 들 것 같다는.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아서 신실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은 그냥 휴일일 뿐이다. 교회에 참석했던 건 가족들이 기뻐하니까, 어릴 때 부터 늘 그래왔으니까, 가 이유였고. 사실 내 모든 교회 활동 자체가 신앙보다는 가족을 위한 거 였지. 근데, 흠,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에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느냐는 여전히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서 한없이 수동적일 수 있고, 현실적으로 제일 쉬운 옵션을 선택하고, 나에게 전혀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왔다는 게 조금 아깝다. 흠. 굉장한 깨달음이군.

신선했던 2007년 크리스마스. 내년엔 더 신선한 모습으로 만납시다. 안녕히 가시구려.

덧글

  • 馬군 2007/12/26 09:33 # 삭제 답글

    트라이플에 왜 고기가 없냐능.
  • 푸딩 2007/12/26 10:21 # 삭제 답글

    호오...-ㅁ-)/ 저거 완전 크림덩어리디저트인데 ㅋㅋㅋ 홍차랑 먹으믄 딱이라는....내년에는 나랑도 함께 보내는기얏? ㅋㅋㅋ 버섯전골이라도 ㅋ
  • 우람이 2007/12/27 00:00 # 답글

    마군 / 말하자면 제대로 만들었으니까 없다능 (..)
    언니 / 이제 크림덩어리들에 익숙해져서 저 정도는 느끼하지도 않더라는 ㅜ.ㅜ (버섯전골!! +_+)
  • Yao 2007/12/27 15:51 # 삭제 답글

    I don't know this party....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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