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 on the floor :)

uram.egloos.com



비오는 날 하버 브릿지에서 타로점을 보다. 생각 thoughts


화요일에 시드니에 와서 마이클네서 지내고 있다. 운 좋게도 격주로 있는 소셜들이 이번주간에 몰려있어서 시드니 친구들도 다 만나고 열심히 마지막주를 불사르고 있음. 하하.

시드니에 두번이나 왔었지만 둘 다 익스체인지 때문에 들렀던거라 도시 관광은 제대로 한 적이 없어 이번엔 나름 관광에 집중하고 있다. 그것도 오늘이 거의 마지막. 내일은 Jojo Jackson이 하는 Girl's Jam 워크샵이 10시반부터 5시까지 하루종일 있고, 일요일은 마이클이 회사에 안가니 같이 놀테고, 월요일은... 월요일은...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_- 

오늘은 하버 브릿지에 갔다. 시드니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오페라 하우스와 그 옆의 다리. 원래 어제 가려고 했는데 그 전날 너무 늦게 자는 바람에 오늘 가게 됐다. 다리를 직접 올라가는 관광패키지가 있는데 (브리즈번에서도 있었따-스토리 브리지) 그건 100불이 넘고 사진을 찍는 것도 제한되어 있대서 그 대신 다리 옆 탑에 올라가는 걸 하려고 했었다. 10불, 사진 촬영 자유. 근데 아침에 눈을 떴는데 기분이 좋은 것이... 공기도 선선하고 좋아하는 빗소리가 들리..... 엥 비?! 그렇다, 비가 왔다 -_-; 다른 때 같았으면 비오는데 뭔 다리구경이냐 하고 관뒀을텐데, 오늘은 왠지 그냥 가고 싶었다. 그래서, 갔다.

마이클이 알려준 하버브릿지 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시티를 지나 왼쪽으로 꺾으면 내려라, 가 전부였는데, 그 설명으로 충분했다 -_- 바로 근처 또 하나의 관광지인 'The Rocks'부터 찬찬히 걸었다. 음, 멜번 같은 느낌이구나. 내가 좋아하는 도시를 순서대로 꼽으면 론체스톤 > 애들레이드 > 멜번 > 퍼스 > 브리즈번 > 캔버라 > 호밧 > 시드니 (..) 일 정도로 시드니는 꼴찌다. 그런데 The Rocks 지역은 멜번 분위기가 많이 났다. 유럽인들이 호주에 도착해서 최초로 정착한 도시라고 하니 최소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셈. 호주는 역사가 짧다보니 200년이면 상당히 오래된 축에 속한다.

비오는 거리를 타박타박 걷다가 앙티크 악세사리 가게를 지나는데 벽에 'Psychic Readings, Here TODAY!'라는 노란색 종이에 멈칫 했다. 평소 같으면 눈길조차 안 주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쪽에 워낙 관심이 없는 나인데, 아까는 왠지 가게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가게 쪽으로 몸을 돌리니 팬던트가 종류별로 유리 진열장에 가득. 안에 팬던트 종류가 더 있으려나 하고 가게안에 발을 들였더니 넉살좋은 아저씨가 "흠... 지금이 몇시냐... 12시니까... (스케줄표 뒤적뒤적) 당장 하려면 15분짜리나 30분짜리 하시면 되겠네!" 하고 알아서 스케줄을 잡아준다. 악세사리들은 장식용이고 타로점을 주로 하는 가게인 것 같았다. 가게 안쪽에 타로점 가르치는 워크샵에 대한 강좌 안내 종이들도 여기저기 붙어있고. 그거 하러 온 거 아닌데, 하려다가 넉살좋은 아저씨의 말투에 묘한 정이 가서 흠 정말 해볼까, 하는 마음에 가격표를 봤더니 15분에 25달러 부터 시작. 한국 갈 날이 며칠 안남은 시점이라 한마디로 거지 -_- 밖에서 30달러짜리 자개로 된 팬던트를 살까말까 고민 하던 참이었는데, 둘 다 하는 건 지갑 사정상 불가능. 그런데 무슨 마음인지 선뜻15분짜리 할게요, 했다.

이층에 올라가서 오른쪽 끝 방, 하면서 아저씨가 손가락으로 천장 한 구석을 가리켰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15분, Jo." 했다. 계단을 올라가니 딱 타로점을 볼 것 같은 언니 - 40대 초반의 허리까지 치렁대는 검은 머리에 눈이 큰 - 가 문앞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카드를 섞으세요."

타짜에서 본 사람들처럼 뽀대나게 섞을 줄은 모르지만 되는대로 대강 카드를 섞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능숙한 솜씨로 카드를 배열하는 언니.

"전체적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기다림이 보여요. 뭐랄까... 인생에서 타이밍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달까."

누군 안 그렇겠냐만은 펼친 타로점에서 처음 보인 점이 그렇다면 좀 더 중요하다는 의미려니 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딴지 걸지 말고 최대한 믿고 협조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테니 그러기로 다짐했다.

그러고 나니 드는 생각이 학부시절 어학연수를 가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 그 땐 특별히 별 생각이 없었다. 가고 싶은 곳도 없었고 가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고. 조금이라도 더 성장한 후인 지금 오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때 떠날 수 있었다는 것도 좋았다.

"You actually got quite a few options that you get to choose but you may get frustrated while you're waiting. If you don't really like it, let it go and wait for another."

상당히 필요한 말이었다. 어렴풋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다. 평생 할 일이 아니면 아예 입사를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 그게 다른 기회를 막는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는 거니까, 뭐 이런 생각.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 편하게 먹자.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여기에서 받아들인 생각들이 나에게 좋은 것들이라며 한국에서 주위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더라도(you will meet some resist) 지키라고 했다. 1년은 긴 시간이었다. 산다는 것, 여행, 직업, 관계 등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뿐인데,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온 변화는 엄청나게 컸다. 그것들을 지키라는 주문. 나에게 좋은 것들(They're good for you.)이라는 응원. 반가운 말이었다.

애인에 관련된 카드를 보더니 좀처럼 같이 다니지 않는 카드가 같이 나왔다며 혼란스러워 했다. 오래묵은 남자친구가 멀리 있고, 이 동네에선 많이 친한 친구들이 있다 했더니 그 중 잠깐이라도 눈이 갔던 사람이 있냐고 묻는다. 오래된 연인과 가벼운 바람(?)이 둘 다 존재하는 경우로 읽을 수 있다면서. 오래된 애인과의 관계는 당분간 큰 변화가 보이지 않고,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건 상황 때문 관계 자체 때문은 아니었을 거라고 한다. 떨어져있었으니 같이 있을 때 만큼 가까울 순 없었던 게 사실이고, 그게 떨어져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면 뭐 당연하고 다행이네. 그리고 카드 상으로는 이별은 아직 안 보인다고 했다. 그럼 결혼하나요? 했더니 결혼도 당장은 안 보인다고. (I don't see an ending of the relationship. He'll be around. But I don't see you getting married in a few years.) 앞으로 1~2년은 연인관계의 변화나 진척보다 직업상의 성취가 더 중요하게 보인다고 했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회사 안 다니고 살아남기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의견들이 돌아왔다. 구체적으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걸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 잘 할 만한 것을 선택했다고, 지금 걱정하는 것 보다 잘 풀릴 거라고 했다. 이게 얼마나 힘이 되던지.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뭐라 하더라도 나 좋은 대로 하라고, 내 생각대로 하는 게 나에게 좋은 거라고 다시 덧붙였다. 하긴, 회사 안다니고 self employed 하겠다는 걸 좋게 볼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

처음에 전체적인 걸 볼까, 아니면 특별히 알고싶은 문제가 있니, 하고 언니가 물었었다. 직업에 대해 물어볼까 애인에 대해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전체적으로 봐주삼 대답했고.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타로점 자체가 카드 위치별로 의미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한번씩은 짚고 넘어가기 마련이다. 비슷하게 언급을 하더라도 내가 잘 듣는 부분은 한마디라도 살을 붙여 이야기 하다보니 직업과 애인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특히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상당히 힘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계획들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기대반 걱정 반이었는데, 그냥 타로 점을 읽을 뿐인데 상당부분 내가 기대하는 점들을 짚어줬달까.

15분이 지나고 마무리를 하면서 한국에서도 타로점 본 적 없는데 오늘 참 좋았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정말 고마웠다. 점이 맞든 틀리든  관계 없다. 그 말을 한 것이 누구냐는 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필요한 말을 필요한 시기에 들을 수 있는 행운은 자주 오지 않는 법이니까. 덕분에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까지 편해졌으니 25달러, 전혀 아깝지 않았다.

마치고 나오는데 계단 옆 의자에 앉아있던 처음 그 넉살좋은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How did it go? "
"Was really good. I'm glad I did this."
"Good! It was meant to be."   

Meant to be. 그 아저씨에겐 모든 사람에게 던지는 습관같은 한마디었겠지만, 그리고 다른 때 같았으면 듣고 흘렸겠지만, 오늘은 왠지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말이었다. 정말 오늘 여기에 와서 타로 점을 보기로 정해져 있었을지도 몰라, 하면서.


덧글

  • 2008/02/03 23:40 # 삭제 답글

    아, 1~2년동안 또 일에 애인님을 빌려줘야 하는거야? ㅋㅋ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