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6일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소담출판사
나의 점수 : ★★★☆
이 여자가 사랑하고 원망하고 기대고 어리광을 부리는 대상, 그 남자가 궁금해졌다;
얼마 전 커피스트에서 내가 앉아있었던 넓찍한 테이블에는 의자가 10개 정도 둘려있었다. 내가 자리를 잡았을 때 내 오른쪽으로 코너를 끼고 앉은 남여 커플, 그 옆으로 커피 필터를 곱게 접던 직원 언니, 내 맞은편으로 5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아이 엄마, 아이가 언니라고 부르는 아가씨가 있었다.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커플은 쉴 새 없이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 밖에 없는 그런 타입의 대화였달까, 어쨌든 전혀 의도치 않았음에도 이 두 사람의 얘기를 한참 듣게 되었다. 두 사람은 나보다 일찍 와서 내가 나올 때까지 있었으니 두 시간 넘게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거다.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였고, 대화는 서로의 연애에 대한 품평회가 주를 이루었다. 여자는 누군가와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 같았고, 남자는 비교적 최근에 여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여자친구가 MT에 갔다가 다른 선배랑 좋게 지내는 게 화근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너야 친구니까 이런 얘기까지 하는 거다, 우리야 친구니까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지, 너랑 못 하는 얘기가 없어서 좋아, 얼마나 좋은 친구사이인지 화두가 바뀔 때마다 꼭 한 번씩 읊어주시는 저 말이 아니었어도, 두 사람 좋은 친구 이상의 관계가 아니라는 거 알 수 있었다. 그냥 보였다. 구경(?)하는 입장에서 재미있었던 건,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이성친구'라고 해도 '이성' 친구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희미한 긴장감은 있더라는 거. 둘이 아직 덜 친하다는 게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청춘남녀는 청춘남녀인게지. 햇살 좋은 봄날에 까페에서 두 시간 넘게 수다 떨 수 있는 연인 아닌 이성 관계. 조쿠나~
두 시간의 수다 중간 즈음, 여자가 물었다.
"너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봤어?"
"에쿠니 가오리... 다른 책은 본 거 있는데 그건 안 읽은 것 같다."
"그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어. 이 책은 혼자인 사람은 둘이 되고 싶어하고, 둘인 사람은 혼자가 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라고."
이노우에 아레노라는 사람이 쓴 작품해설이 책 뒷쪽에 있는데, 그 중 일부가 뒷표지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부분이다.
"결혼 생활을 테마로 한 에세이를 여성지에 연재하기로 했어요."라고 에쿠니 씨가 말한 후,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글을 보니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아니 예상보다 훨씬 스펙터클하고, 훨씬 무서웠다. 그렇다,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 한참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증오를 생각하고, 증오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사랑의 기억을 추억하고, 혼자인 사람은 둘이 되고 싶어하고, 둘인 사람은 혼자가 되고 싶어할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특히 여자들이 '혼자인 사람은 둘이 되고 싶어하고, 둘인 사람은 혼자가 되고 싶어 할테니까.'라는 이 문장에 공감하고 좋아하는 걸 봤다. 그리고 그 때 난 별 감흥 없어 한 기억도 있다. 몇 번을 읽어도 그랬다. 그 때 둘이었지만 책 때문에 혼자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던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도 그건 책 때문이 아니었고.)
집에 돌아와서도 괜히 그 여자분의 목소리가 맴돌아서 책장 한 쪽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모아둔 쪽에 가서 책을 꺼냈다. 요즘 천천히 읽기가 나름 몸에 배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강남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딱 40분만에 머릿말부터 역자후기까지 꼭 맞게 읽히더라. 40분 꼭 맞게 읽히는 책이라. 요즘 약간 무거운 텍스트를 더 접해서 그런지 약간 헐렁한 기분도 들지었만 잠자던 감성이 죽었나 살았나 테스트 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와 타인사이에 존재하는 소통의 한계는 때론 무한대이고, 때론 작지만 견고하고, 때론 놀랄만큼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사안에 따라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연인 간의 소통의 한계는 작지만 견고하고, 슬프게도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커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결혼은 그 속도에 폭발적인 가속력를 붙이는 그 무엇. 물론 모든 커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 한계에 대해 욕심부리지 않는 것이 에쿠니 가오리의 결혼 전략이고, '무슨 말이든 써도 상관없다'고 말해준 '고마운 남편'의 결혼 전략은 그녀도 언급한 '관용' 인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증오를 생각하게 하고, 둘인 사람이 혼자가 되고 싶게 하는' 글을 적고, 기고하고, 출판할 수 있었던 것은 에쿠니 가오리에게 '비빌 언덕'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것을 무력화 시키는, 또는 수용 가능한 범위까지 중성화 시키는 비빌 언덕. '증오에 빠져있는 사람은 사랑의 기억을 추억하게 하고, 혼자인 사람은 둘이 되고 싶어하게 하는' 그녀만의 '비빌 언덕'. 수 많은 타인에게 늪이 될 수 있는 글을 내 놓으면서, 자신은 그 언덕의 품을 벗어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그녀를 '무책임함'이라는 단어로 원망하고 싶다. 차라리 다른 소설처럼 픽션이었다면, 하는 바람은 그래서 소용없지만 간절하다.
* 김난주씨의 번역을 좋아하는 편인데, 에쿠니 가오리 책에서 더 유난한 건지 모르겠지만 역자 후기가 상당히 존재감이 있다. 번역 후기가 아니라 역자 후기라는 표현히 확실히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 by | 2008/05/06 16:14 | 리뷰 review | 트랙백 | 핑백(2)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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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 / 에쿠니 가오리씨 책의 여주인공은 어딘가 닮은 것 같지 않으세요? 저는 에쿠니 가오리 소설 속 여주인공을 보면 왠지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놓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책도 소설이라고 해도 그냥 믿었을 거 같아요. 또 한 명의 작가 본인을 닮은 여주인공인가보다, 하면서. 저의 경우 제일 좋아하는 책은 단연 냉정과 열정사이 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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