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그리고 성시경

+ 푸른밤 막방. 성시경이 운다. 눈물이 잔뜩 묻은 목소리. 코맹맹이 소리로 말끝을 잇지 못하는 성 DJ에 귀 기울이며 난... 눈물도 나지 않는다. 오늘 라디오 생방을 놓칠까봐 어찌나 마음 졸였던지. 라디오 좋아하고 참 많이 듣는 편인데, DJ 보내면서 이런 마음은 또 처음이다.

+ 성시경이 DJ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던 무렵, 문장과 문장 사이에 묘한 공백을 느꼈었다. '방송 사고다, 아니다'의 경계를 오가는 애매한 길이의 공백. 처음엔 그게 '초보 디제이의 미숙함'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그 공백을 새롭게 해석하게 된 순간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진심이 아닌 말은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말버릇 같은 공백이었다. 요전에도 몇 번 포스팅 했듯이,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 순간 그 즈음 오갈데 없던 자정 라디오 채널을 고정하기로 마음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 와. 이적의 '다행이다'라는 노래는 발표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많은 가수들이 불러왔는데, 유난히 성시경 버전이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다행이다'를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이적이 부른 원곡의 느낌을 살리느라 창법까지 따라하게 되는데, 시경씨가 부르면 가장 이적과 다른 색깔의 노래가 나올 것 같았다. 성DJ는 누구 창법을 따라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이적이랑은 워낙 음색이 다르니 더 궁금했을지도. 그리고 시경씨 목소리, 참 좋아하는 보컬이니까. 다른 이유 더 필요 없다. 시경씨 목소리 참 좋아해서, 시경씨 목소리로 부른 '다행이다'를 듣고 싶었다. 지금 우리 성DJ가 코맹맹이 소리로 부르고 있다. 피아노를 치면서. 좋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 성 DJ, 고마워요. 큰 선물 주고 가네요. 정말로.

+ 이기심은 자연스러운 거라는 거, 자랑할 것도 아니지만 숨길 것도 아니라는 거.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란체님 화이링;) 이 간단한 진리.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좋은데, 그걸 방송에서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깡. 그게 참 좋았다. 그러니까 이런 거.

"남자친구가 군에 있는데 왕 킹카 소개팅이 들어왔어요. 나가면 안 되겠죠?"
"안 되는 게 어딨어요, 나가도 됩니다. 안 나가도 되구요."

이건 글로 읽었어도 성시경이 한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그만큼 성시경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가 그만큼 성시경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많이도 좋아하는 것 같고나. '내게 오는 길'을 처음 들었을 때 반해버렸던 느낌, 전 앨범을 소장하고 있는 몇 안되는 가수, 이런 사실과 별도로 라디오를 통해 느즈막히 좋아진 '인간' 성시경.

+ 생각해보니 이런 사람이 애인이라면 어떨까, 그런 상상을 해 본 생애 두 번째 연예인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당근 정재형인데(내 마음 속에서 정재형은 적이 없다; 무조건 뭘 해도 일 등!), 어찌보면 정재형보다 더 현실성있게 상상했었으니 오히려 다른 의미로 첫번째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정재형은 '모시고' 살고 싶은 사람으로 상상했다면, 시경씨는 티격태격도 하고, 달래고 물고 빨고 하면서 사는 좀 더 실제에 가까운 애인으로 상상했던 것 같다. 뭐, 현실성 따위 전혀 없고, 성시경이 알게 될 리도 없고, 안다고 좋아할 리도 없겠지만, 그랬다는 얘기다 -.-;

+ 나도 이동진 기자랑 같은 거 원해요. 어디에서 무얼 하든,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지금의 감수성 고이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요 :)

by 우람이 | 2008/05/13 02:20 | 생각 thoughts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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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박양 at 2008/05/13 09:34
까칠한 성DJ가 울다니요.ㅜㅜ 지금의 지성과 감수성을 다치지 말기 바란다고 했던가요. 저도 같은 거 원해요.;;
Commented by 우람이 at 2008/05/13 11:48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계라도 하나 해야할까봐요. 이름하야 성DJ 감수성 사수 위원회...;
Commented by clytie at 2008/05/13 11:51
어제 중간부터 들었는데 성DJ 우는 거 듣고 깜놀...;;
제가 사실 푸른 밤을 많이 듣진 못했지만 그가 푸른밤에 큰 애정을 가지고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우는 모습 보일 줄은 몰랐어요, 사실.
그래서 놀라고 그래서 그 큰 애정을 느낄 수 있었던 밤이었던것 같아요.
어제 푸른 밤에서 되돌아온 문자 메시지는 못지울 것 같아요..;ㅁ; 그 문자 보고 찔끔 울었다는....

찬물 끼얹는 소린지 모르지만 길 잃은 푸른밤 주민들...'라디오 천국'으로 오세요..;ㅁ;
Commented by 우람이 at 2008/05/13 12:05
희열님 복귀하셨을 때 저도 제가 희열님의 품으로 오라방~을 외치며 돌아가거나 최소한 고민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푸른밤에서 꼼짝 안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랬답니다 ㅋ 몇 번 외도도 해봤는데 (라됴천국에 정재형님이 나오시는 날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_-;;;) 그 후로 더더욱 푸른밤에 안착하게 되더라는 '')a

저는 성DJ가 마구 슬퍼해서 더 성DJ 같고 친근하고 그랬어요. 담담하고 멋있는 막방보다도 가장 성DJ스러운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가장 '프로다운' 라디오 막방은 '유영석의 FM 인기가요'랑 '김동률의 FM 인기가요' 막방이었는데, 그와 대조되던 우리 성DJ의 막방 모습 - 슬퍼요, 어떡해, 시간이 너무 아깝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훌쩍훌쩍... - 이렇게 속에 있는 말 두서없이 주저리 주저리 꺼내놓는 모습이 참 이쁘던데요. 그렇게 자기 모습을 있는대로 보여주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다는 거, 그게 성DJ의 매력이잖아요. 그래서 전 어제 성DJ 우는 거 놀랍지도 않았고, 들으면서 참 이쁘다는 생각 했어요. 아, 어제 '사랑을 말하다' 들으면서는 저도 살짝 울 뻔 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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