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 on the flo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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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물 생각 thoughts

망나니 내 동생 ㅋ 지금은 제대하고 학교를 다니지만 군대 가기 전엔 저녁 6시 등교 아침 6시 하교 생활을 했었다. 한 마디로 학교는 술 먹으러 갔기 때문에 저녁에 등교 했다는 거 -_-; 술을 워낙 좋아해서 자주 먹고, 먹을 때 마다 많이 먹는 술꾼이다. 동생이 술을 먹고 들어오면 다음날 아침에 꿀물을 타주곤 했는데, 술을 먹는 빈도수가 주 7회에서 주 1~2회로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다. 꿀물 타는 게 많이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달라고 찾진 않지만 주면 잘 먹으니까 타 준다. 원래 입이 짧은 애라 뭐라도 잘 받아 먹으면 그저 이쁘다.
진짜 꿀을 뜨거운 물에 타서 찬물을 섞고 냉장고에서 식힌다. 아주 맑진 않고 약간 뽀얀 색이 나온다.

사실 처음에 꿀물을 타주기 시작한 이유는 엄마가 꿀을 큰 단지로 하나 가득 주셨는데 당최 먹을 일이 없어서 였다 -.-; 이거 어디다 쓰나 생각하다가 '숙취해소엔 꿀물'이라는 걸 보고 한 번 타줘봤다. 술 먹은 다음날이면 입맛도 없어하고, 안 그래도 잘 안 먹는 아침도 더 못 먹으니 뭐라도 먹이고 싶기도 했고.

아직도 기억나는데 꿀물을 처음 타주던 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끈따끈한 꿀물을 들고 침대로 갔었다. 그 때가 겨울이었고, 내가 술을 안먹으니까 숙취가 뭔지 몰라서 그랬다. 원래 겨울 아침에 일어나면 따끈한 거 먹고싶은 거 아닌가? -.-; 나중에 엄마랑 재명이한테 들으니까 술 먹은 다음날 아침엔 속이 느글거리고 시원한 냉수가 땡긴다며? -_-;;; 거기다 대고 그릇까지 데워서 제대로 따끈따끈 한 꿀물을 들이댔으니 (..) 그 후로는 뜨거운 물 약간에 꿀을 녹이고, 찬 물을 섞어서 식히고, 시원해지라고 냉장고에 넣어둔다.

동생이 늦게 들어오면 100% 술을 먹고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때까지 내가 안 자고 있었으면 밤에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기도 하고, 다음날 아침에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두기도 한다. 깜빡 잊고 동생이 일어날 때까지 안 만들어 뒀으면 그 때 얼른 만들어서 냉동실에 넣는다. 그럼 시원하지 않아도 "이거 나 먹으라고 둔 거지?" 하면서 잘 꺼내 마신다. 그러니까 안 해 줬을 때 "꿀물 없어?" 하고 찾지는 않지만, 해 주면 잘 먹는다. 다른 얘기인 것 같지만, 오늘이 쓰레기 내놓는 날이니까 나갈 때 이거 밖에다 내다놔, 하면 잊어버리지 않는 한 불평없이 잘 내다 놓는다. 하지만 그렇게 일러두지 않으면 칠판에 쓰레기 버리는 요일이 써있고 현관 앞에 꽉 찬 쓰레기 봉투가 있어도 눈길도 주지 않는다.

많은 남자들이 집안일에 대해 가지는 태도인 '수동성'의 두 가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맞벌이 부부 생활에서 집안 일에 소홀한 남자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시키는 것만 한다'는 것이 꼭 들어간다. '시키는 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라는 반론은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패스.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도 노동이다. 단발성으로 그 때 딱 판단하고 행동해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냉장고 상황에 따라 언제 장을 보아야 하는지, 쓰레기 내놓는 요일은 언제고 쓰레기 봉투는 얼마나 찼는지, 요금 고지서는 언제 나오는지, 이렇게 전체적인 상황을 머릿 속에 가지고 있는다는 것, 큰 노동이다.

요즘 동생이 과일을 직접 꺼내서 깎아먹고, 작은 설거지라도 그 때 그 때 끝내고, 화장실 쓰레기를 비우는 등 '시키지 않은 집안일을 스스로 판단해서 하는 것'을 굉장히 기특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그게 어떤 집안일이든 누가 시키지 않았을 때 필요를 느끼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내 동생에게는 정말 큰 변화라서. 동생은 원래 배 고플 때 밥은 찾아 먹어도 과일은 '깎아서 가져다 바치지 않는 한' 안 먹는다. 문제는 아예 과일을 안 먹는 거면 상관을 안하겠는데, 깎아다 주면 잘 먹기 때문에 안 주기도 뭐하다는 거였다. 그러니 지금 냉장고에 있으면 알아서 찾아 먹는 모습이 이쁠 수밖에. 예전엔 방에 형광등이 나갔을 때 내가 형광등을 갈아 줄 때까지 약 2주 정도를 불 없이 살더니, 이번엔 형광등 두 개 중 한개만 나갔는데도 어디서 파는지 물어봐서 며칠만에 갈더라. 큰 변화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내가 동생을 그래도 나름 챙기는 이유는 누나로서의 의무감 때문이 아니다. 안 해주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도 아니다. 이뻐서다. 내 동생이 아니라고 해도 참 이쁜 사람이라서다. 이뻐서 해주고 싶어서 해주고 싶은 것만 해 주는 것 뿐이다. 동생은 내가 빨래를 해서 개다주면 말 그대로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한다. 노크하면서 '애기야 빨래~'하면 뭘 하고 있었든 뛰어 나와서 '어, 누나, 아 고마워~ 진짜 고마워~' 한다. 처음엔 '새속옷이 급했나보다' 생각했는데 그 때마다 그러길래 물어봤더니 '아 진짜 고맙잖아~' 한다. 그러니 개지 않은 빨래를 방에 대충 던져놨다고 해서 왜 안 개줬냐고 불평을 하는 일은 전혀 없다. '꿀물 왜 안 해놨어?'라든지 '나 배고픈데 야식해 줘.'라고 하는 일도 없다. 냉장고를 뒤지거나, 음식을 시키거나, 집에 먹을 거 없냐고 물어보거나, 같이 뭐 해먹을까, 하고 꼬시는 일은 있어도 '내가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내어 놓아라'는 염치없는 짓이라서 안 한다. 가끔 배가 고플 시간에 '뭐 먹을래, 뭐 해줄까'하고 먼저 물으면 미안해 하면서 좋아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 설거지라도 하려고 한다. 냉동실에 야식이 다 떨어져도 '집에 먹을 거 없으니 사다놔라' 같은 말도 안 한다. 만일 동생이 내가 밥을 해 주고 야식을 채워놓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면, 그래서 내가 그러지 않았을 때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면, 아마 그 때부터 집에서 밥 얻어먹기는 끝난 걸 거다. 이렇게 내가 동생을 챙기는 것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자발적이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조금 일반인의 정서에 가깝게 생각하면 같이 사는 사람이 집에서 먹을 게 없어서 바깥 음식만으로 연명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정도? 딱 그 정도.

근데 생각할 수록 나중에 내 동생이랑 결혼할 사람에게 미안한 것이, 나한테야 동생이니까 저 개미 눈꼽같은 변화를 이쁘다고 봐주는 거지, 사귀는 사람이었으면 아마 일찌감치 마음 접었을 거다. 변화를 위한 시도나 노력조차도 해보지 않고 접었을 거다. 사람이 변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도 하고, 성공하더라도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아니까. 같은 사람인데 동생일 땐 이렇게 이쁘기만 하고 퍼주고 싶은데, 애인이라고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는 이 아이러니한 사실. 솔직히 나랑 친한 애가 내 동생이랑 결혼하겠다 그러면 일단 말릴 거 같다. 원 헌드레드 빠센트 그녀를 위해서;;;

아무튼 동생 장가가면 올케한테 무지 잘 해줘야지 (..)

덧글

  • Jacob 2011/01/25 15:15 # 삭제 답글

    ㅋㅋ 꿀물 관련해서 재밌게 봤습니다. 좋은 누님이시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ㅎㅎ
  • 우람이 2011/01/25 18: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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