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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리뷰 review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나의 점수 : ★★★★

인생은 사고의 모음. 그 사고의 종류와 방법과 대상을 골고루 섞어 랜덤으로 맞춘 퍼즐 같은 소설 :) 단편 소설의 매력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극대화시키는 작가에게 마구 빠져들게 된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 소설집. 영화 [어웨이 프롬 허]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선물 받았다. 나는 소설보다는 비소설을 좋아하고 소설을 읽더라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하는데, 이 소설은 소장하게 되어서 아주 기쁘다. 다 읽고 난 소감은...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생각보다 이미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난 이 작가 할머니에게 완전 포옥 빠져버렸음 ㅋ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심 사건이라 부를만한 이야기가 언제나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어떨 땐 사건이 현재 시점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소설 시작부터 사건 전까지는 아주 따분하고 지루하다가, 갑자기 손을 책을 떼지 못하는 순간이 폭풍우처럼 닥쳤다가, 마악 재미가 절정에 달할 무렵 끝나버린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건 그 자체보다도 [사건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아주 소박한 클라이막스가 지루한 일상 속에서 고개를 들게 되는 계기] 이다.

그런데 책 뒷면에 작가 인터뷰의 일부가 나와 있었다.

"작품을 쓸 때 특정한 형식을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지요. 그것도 누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풀어쓰는 구닥다리 방식으로요. 그러나 저는 '일어난 일'을 조금은 다른 형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떤 우회로를 거쳐, 낯선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말이죠. 저는 독자들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어나는 방식'에 놀라움을 느끼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단편소설이 거둘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 할머니의 의도를 매우 충실하게 따른 것이 된다. 단편소설을 전혀 안 읽어본 건 아닌데 다른 책에서 이런 식의 재미를 찾아본 기억은 없는 걸-.-a 어쨌든 작가의 의도에 고대로 낚인(?) 독자가 하나 추가되었으니, 작가님께 축하의 메세지를 보내는 바이다 -.-)/~

원제는 Hateship, Friendship, Courtship, Loveship, Marriage인데 이건 첫 번째 단편의 본문에 나오는 게임에서 따 온 거다. 이름으로 보는 글자점 이랄까.

그 애가 알려 준 놀이라고는 딱 하나, 종이에 남자애 이름과 자기 이름을 적고는 서로 같은 철자를 지워버린 다음, 남은 글자 수에 맞춰 손가락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차례로 말하면서 세어나가는 것이었다. 그 숫자에 딱 걸리는 단어가 그 남자 애와 나 사이의 운병이라면서.


그런데 세 번째 Courtship이 '구애'로 번역되는 것이 약간 뜬금없는 것 같아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한영사전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구혼'의 의미로 나와있고, 영영사전에서는 그 뜻도 있지만 '연애기간, 즉 결혼 전 사귀는 기간'이라는 뜻이 먼저 나온다. 같이 나열된 다른 단어들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도 '연애' 쪽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역자는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다.

Grant  : "She said, `Do you think it'd be fun we got married?'"
Kristy  : "And what did you say?"
Grant  : "I took her up on it. I never wanted to be away from her."

어웨이 프롬 허의 자막을 보면서도 그랬는데, 책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번역이 조금 아쉬웠다. 이건 우리말로 했을 때 "우리가 결혼하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요?" 라고 번역하면 어감까지 딱 떨어지도록 똑 같을 것 같은데 책에서 "우리가 결혼하면 재미있을까요?"로 번역되었고 영화 자막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아쉽다. 이것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번역은 좋았다.

책을 선물받자마자 허겁지겁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읽었었다. [어웨이 프롬 허]의 원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른 단편들을 읽고, 마지막에 있는 '곰이 산을 넘어오다'를 다시 읽었다. 그랬더니 한가지 궁금증이 풀렸다.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마무리가 약간 균형이 맞지 않게 아쉽다는 생각을 했었다.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땐 정신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영화 내용을 대충 까먹은 상태에서 원작을 두 번째로 읽어보니 책에서 그 엔딩의 의미가 보였다. 그리고 이 단편을 마무리하는데 그것이 모자랄 것 없는 엔딩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데 영화를 생각해보면, 원작에 충실하긴 했지만 어쨌든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은 영화로서는, 영화의 엔딩을 원작에 그대로 기대기에 약간 무리가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씬으로 엔딩을 하려거든 더 많은 시간이나 비중을 두었어야 했을 듯. 그래도 좋은 영화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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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흐흐 2008/06/19 00:31 # 삭제 답글

    우리가 결혼 했을 때 재밌을까요? 라는 표현 보다는 '웃길까요(이상할까요)?' 라는게 더 맞지 않을까요?

    'haha' fun이 있는 반면, 'strange' fun 이 있거든요.

    ex, "Is it funny if i say I want to go out with you?"

    당연 억양이나 상황에 따라서 'HAHA' 인지 'STRANGE' 인지 갈리겠지요 :)
  • 우람이 2008/06/19 00:48 #

    기회 있으시면 영화에 나오는 어감을 직접 보시고 어느쪽 같은지 또 알려주러 와주세요! :D 지금 기억으로 저는 haha fun이나 strange fun보다는 interesting 쪽이었던 것 같은 느낌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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