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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정선희. 생각 thoughts

불미스러운 일로 정선희씨가 정오의 희망곡(이하 정희)에서 잠시 물러난 후, 정희는 한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DJ가 바뀌는 '임시 DJ 체제'를 밀고 나갔다. 그러다 얼마전부터는 정희의 장수 게스트이자 첫 대타 디제이를 했던 김효진씨가 임시 DJ를 맡고 있었다. 다들 중간 이상은 하시는 나름 보증수표 대타 DJ들이었지만, 정희 가족들은 '선희 언니만이 가능한 2%'에 목말라 했을 거다. 라디오는 매우 사적인 매체다. 그리고 정희는 그런 방송이다. 정선희는 정희에게, 정희 가족들에게 그런 DJ다.

어제 아침, 문득 정선희가 라디오 복귀하려면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온대도 한참 시끄럽겠지. 그런데 점심 때 집을 나서면서 아무 생각없이 mp3를 틀었는데 정선희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 듣고 깜짝 놀라면서도 참 반가웠다. 아직 어딘가 주눅 들어있고 예전처럼 빵빵 치고 나가는 기운은 많이 죽어 있었지만, 그래도, 돌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참 고맙고 반가웠다. 용기가 많이 필요했을텐데.

개인적으로 이번 일은 '연예인이 사고치고 여론이 조금 잠잠해지니까 다시 얼굴을 들이미는 사건'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사고를 친 사람은 정선희가 아니라 '정선희 퇴출'을 외쳤던 누리꾼들이다. 나는 정선희를 좋아했고, 좋아한다. 정오의 희망곡 애청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이 사건의 당사자가 정선희여서 하는 말은 아니다. 이런 일을 당한 사람이 내가 싫어하는 연예인이었어도 나의 의견은 같았을 거다.

누군가 애매한 말실수를 했다. 그 때 나도 방송을 듣고 있던 청취자의 한 사람이었는데, 이건 아무리 나쁘게 들으려고 해도 '애매한' 말 실수였다. 듣는 입장에서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비약'이 분명히 있었지만, '비난'은 없었다. 그런데 그 해석하기 애매한 말실수가 누리꾼들의 손을 한 번 타고 나니 "정선희는 골수 개독교인이라서 2MB 장로 편에서 촛불시위를 눈쌀 찌푸린 채 보고 있었고, 그런 시각이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것이다."라고 변신했고, 이러한 유추를 근거한 비난이 거세졌다. 다음 기사 리플에도, 아고라에도,  MBC 정희 홈페이지에도, 수많은 보도기사 리플에도 그런 식의 '정보의 확대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선희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정선희가 직접 발언을 한 내용에 국한되어야 한다. 해석하기에 따라 촛불시위 지지자들(나 포함)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애매한' 발언이었다. 발언 자체는 방송퇴출 감은 아니었다는 거다. 발언 자체가 방송퇴출 감이 아니었다면, 결과도 그러했어야 했다.

정선희가 '골수 개독교인'이건, '2MB 빠'이건, '촛불시위를 시러라'했건, 그건 잘못이 아니다. 개인의 사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것도 본인이 방송에서 밝힌 것이 아니라 누리꾼들이 유추해서 퍼트린 정보이기 때문에, 사실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정선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이명박을 남몰래 사모하는 빠순이인가, 그건 밝힌 바 없다. 그리고 만약에, 만약에 그렇다고 치자. 그게 방송에서 퇴출 당해야 하는 죄인가? (나도 죄라고 하고 싶다 -_- 근데 안타깝게도 죄가 아니다. 그게 죄면, 유인촌은 사형감이지 -_-;) "저는 이 대통령을 지지합니다."라고 밝혔어도 방송 퇴출 당할 죄는 아니다. 그런데 그런 발언 조차 한 적이 없는 이 장수 DJ는 (비록 일시적이지만) 방송을 하차 했야 했다. '촛불시위를 시러라 하는가'도 정선희의 발언이 아니라 정선희의 애매한 발언을 유추해석한 누리꾼들에게서 나온 말이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일부 혹은 다수 대중의 심기가 불편했다고 하자. 그래도 '괴씸죄'는 처벌할 수 있는 죄가 아니다. '괴씸죄'를 죄로 만드는 것은 군사 정권이나 하던 일이다. 조중동이나 하는 일이다. 지금 2MB가 하는 일이다. 정치검찰이 하고 있는 일이다. 양심에 어긋나서 못해먹겠다며 전경에서 육군으로 복무전환 신청을 낸 상경에게 이중처벌(영창 15일, 구속영장 신청, 면회 외출 외박 전화사용 2개월 정지)을 내리는 것, 이런 게 괴씸죄를 근거로 한, 다시 말해서 법률 근거가 없는 처벌이다. 미워하며 닮는다더니, 이번 '사고'를 친 누리꾼들이 한 일은, 그들이 싫어하는 세력들을 닮아가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통령 하는 짓거리에 화가 난 것을 아무리 표출해도 부족하니 그 울분을 엉뚱한 곳에 쏟아붓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꼈을 영혼들이 딱하다. 그건 딱한 거다. 동정받을만한 일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들,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하라고 기도하셨다. 딱한 사람들이니까. (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교회에 다녀서 교회식 표현에는 익숙하지만 신자는 아님;)

정선희의 발언에서 촛불시위대와 연결시킬 수 있는 부분은 애매했다. 그래서 '정선희를 방송에서 퇴출시켜라'라고 주장한 사람들과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입장에서 말 하면, 종로에서 파란 옷 입은 사람에게 뺨 맞아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사람이 한강 물이 파랗다고 거기다 화풀이를 한 걸로 보인다. 한강은 얼마나 억울하겠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라고.

정선희 죽여서 뭐가 바뀌나. 정선희 발언의 잘못과 책임은 '울분에 넘쳐있는 집단이 오해를 할 수 있는 발언을 매우 민감한 시기에 했다' 까지다. '저 DJ가 대통령과 같은 종교를 가졌고,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 같고, 내가 지지하는 시위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는 건 짐작이었다. '확대 재생산'이었다. 다시, 정선희 죽여서 뭐가 바뀌나. 정말로 대통령과 같은 종교를 가졌고, 대통령을 지지하고, 촛불시위를 싫어하는 사람, 국회에 널렸다. 절반을 훌쩍 넘어 개헌이 가능한 수준의 숫자라고 한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그 모든 사실을 터진 입으로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정선희를 비난하는 건 지금 내가 싫은 그 상황에 어떤 의미있는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 그 힘 아껴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일에 쓰시라. 한나라당 홈페이지에 가서 대통령의 직권남용과 촛불집회의 정당성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어렵고, MBC 홈페이지에 가서 '정선희씨 실망입니다. 깨끗하게 DJ직 물러놓고 하차하세요.'하는 건 쉽다. 그러나 쉬운 일과 중요한 일은 일치하지 않는다.

잘 생각해보자. 어느 쪽이 더 급하고,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어느 쪽이 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더 급하고 더 중요하지만 어려워서 못했다면, 쓸데 없고 중요하지도 않으면서 쉽기만 한 일에 에너지 쓰지 말고, 그 에너지 아껴서 급하고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내공을 기르자. 책도 읽고, 신문 기사도 읽고, 칼럼도 읽고, 기고문도 읽으면서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상대를 꼼짝 못하게 묶어버릴 수 있는 '비판' 할 수 있는 내공을 쌓자고.

개인적으로 정선희에게 실망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녀에게 정치인과 사회현상에 대한 올바른(내 기준으로) 판단력이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건 내가 강요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이런 경우 그 사람에게서 그 부분만 포기한다. 가까운 사람일 경우 나와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면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사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정치적 견해가 크게 다른 경우도 많지 않다. 가까운 사람이 얼마 없기도 하고, 친해지다보면 비슷한 사람이더라 -_-;)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원하지 않는 것을 왜 방송인에게 강요하고, 책임을 묻는가. 그것도 '사실'이 아니라 '유추'를 근거로 해서.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정선희라는 개인이 앞으로 정치적으로 나와 같은 견해를 가지기 더 어려워졌겠구나, 하는 점이다. 이렇게 데이면서 촛불집회가 이뻐 보였을까? '아 내 생각이 잘못 되었구나', 라고 생각했을까 '저것들 더 조심해야 겠구나', 했을까. 상식적으로 어느 쪽으로 변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은가. 우리와 견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나라를 망치고 있는 그 사람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 '공격적'이기 전에 '애틋'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놓고 돈먹고 돈먹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즉 이명박 당선을 위해서 돈을 투자했고, 그 돈을 회수해야 하는 사람들), 다 속고 찍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2%를 위한 사람이 '서민의 대통령' 이미지를 뒤집어 썼고, 사람들은 거기에 속았다. 이명박을 지지했고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사기 피해자라는 얘기다. 그리고 자기가 아직도 사기당한지 모르고 있다. 그러니 공격하기 전에 동정해야지. 공격 할 때 하더라도, 마음 한켠에 측은지심을 가져야지.

어제 방송을 나오기 전에 친구들이 전화를 해서 자기보다 더 떨더라고 말했다. 듣는 내내 나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겁나서 정희 홈페이지도 못 들어가봤다. 만일 아직도 정희 홈페이지에 열심히 '물러나라' 하는 글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에너지 아껴서 청와대 홈페이지, 한나라당 홈페이지, 조중동 홈페이지 가서 반대 의견 적으라고 하고 싶다. 정선희를 공격하고 있는 이유를 잘 생각해보면, 그쪽들이야말로 당신들이 정말로 공격해야할 대상들이니까.

정선희가 돌아왔다. 반갑다, 정선희.

* 다음 블로거 뉴스에 가봤더니 정선희의 복귀에 대한 글이 이미 많이 올라와 있고, 그 대부분은 '조기 복귀'에 대해 염려하는 글이다. 그 중 나랑 생각이 비슷한 글이 있어서 링크. [정선희 복귀, 반갑다.]

덧글

  • 부단뽀이 2008/07/16 00:48 # 답글

    한 번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계속 이죽댔다던데 정선희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람이 2008/07/16 08:21 #

    말꼬리 잡아 길게 말하지 않을게요. 그렇게 생각 하실 수도 있지요 ;)
  • clytie 2008/07/16 20:28 # 답글

    저는 정희 애청자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12시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에 깔깔 거리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하던 사람입니다.
    그녀가 확실히 말실수를 했고 적절치 못한 예시를 들고 비약을 한 건 사실이지만 정희를 듣지도 않던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그녀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 가슴이 아팠고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그 전에 그녀가 가끔 말했던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걱정이라든가 이런건 아무도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그 한번의 말로 몇년간 그녀를 들으며 즐거워했던 사람들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뺐는 건 아닌가 걱정했습니다. 아직 복귀하신 방송은 듣지 못했지만 저는 환영입니다. 예전의 활기찬 그녀의 목소리를 지금 당장 바라진 못하겠지만 곧....그녀가 모든 이들에게 용서 받고 이해 받길 바랍니다. (사실 용서라는 말 보단 이해가 옳을 듯 싶어요. ;ㅁ;)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우람이 2008/07/16 21:10 #

    저는 감정적으로 제일 서운했던 게 그거였어요. 정희 홈페이지에서 그 난리를 치셨던 분들의 대다수는 정희 가족이 아니었다는 거...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뭐랄까, 그냥 보면 알 수 있었거든요. 촛불시위를 통해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었지만 나와 다른 것과 틀린 것, 혹은 정말 '틀린 것'이라고 해도 '일단 닥치고 인정' 해 줄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학습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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