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 on the flo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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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고 싶어서 #2, 묵호 등대 리뷰 review

묵호등대.
멀리서 등대의 위치를 확인하고 등산하는 기분으로 낑낑.
앗, 뭔가 너무 예쁜 집 발견!!!
'등대오름길'에 어울리는 집이야 ioi
저 예쁜 집 건너편엔 이런 집이 있었다 (..)
도착. 묵호등대 앞 바다 풍경. 등대도, 등대 앞마당도 잘 꾸며져 있다.
나의 등대는 떠난 길을 비출 뿐 길을 떠나지 않는다...

백년이었나, 등대 몇 주년 기념으로 등대를 소재로 한 시 대회를 열었던 모양이다. 입상작 중 5~6편을 이렇게 전시해 놓았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나의 등대는 길을 떠나지 않는다.. 이렇게 앞마당과 등대 겉모습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등대 가까이에 가니 등대 뒷편에 문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들어가니 전국 등대의 사진과 안내도가 보인다. 방문객을 위한 방명록도 있다. 대충 아침 8~9시쯤부터 저녁 5~6시까지 입장 가능.
"내가 등대 한 번도 안 가봤댔잖아. 이유가 있네. 충남엔 등대가 거의 없어."
뱅글뱅글 계단을 오르면.. (별로 안높다.)
짜잔. 바다.
짜잔. 묵호시.

계단을 다 오르니 유리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아무도 없어도 환영받는 기분이었다. 등대 밖은 바람이 매우 차고 거셌는데, 등대안은 별도의 난방이 없이도 놀랍도록 따뜻하고 포근했다. 두꺼운 유리창과 그 유리창을 넘어오던 햇살 만으로도 전망대엔 충분한 온기가 돌고 있었다. 우리는 전망대에 들어서자마자 배낭을 그 자리에 내려놓고 전망대를 돌기 시작했다. 어제 걸어다닌 묵호항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오빠는 창문을 열고 바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난 난간에 기대어 한참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등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은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시선이 쌓일수록 점점 더 예뻐졌다. 마침내 어느 순간에는 피렌체의 두오모가 부럽지 않다는 생각까지 들었다.'피렌체의 두오모'는 나에게 로망 그 자체다. 이제 내가 선망하는 것이 그 장소인지, '피렌체의 두오모'라는 말인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오래 품고 있던 로망. 그런데 정말로 묵호등대 베란다에 넘실대던 햇살이 어느 순간 그 '피렌체의 두오모'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이 베란다는 한마디로 새하얗고, 따스했다. 매서운 바람이 윙윙대는 소리는 그대로 들이쳤지만, 공기만큼은 바깥 세상과 완벽하게 격리되어 아늑했다.
안쪽 벽엔 사진으로 찍은 전망대 밖 풍경. 앞애 보이는 분홍색 건물이 '종점 매점'

친구는 등대 뒷 편에 보이던 '종점 매점' 음료수를 사오겠다며 마시고 싶은 것을 물었다. "초콜렛 우유, 없으면 커피"라고 대답했는데, 한 달음에 매점에 다녀온 친구는 따뜻한 캔커피를 내밀며 개구지게 웃었다. "우유는 없대. 근데 이 커피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아?" 무슨 소린가 했더니 매점에 들어가서 "따뜻한 음료 없어요?" 하고 물으니 "뭐? 커피? 몇 개?"하고 물으시더랜다. 보여달라고 할랬더니 할아버지께서 "아니 뭘 보려고..."하시며 커피를 꺼내신 곳은 바로 밥통. 하하하.
근데 레쓰비는 언제부터 이렇게 로맨틱했대요?

음료수를 사러 간 친구를 기다리다 바닥 타일을 봤는데, 미색 바탕의 타일엔 조금 진한 미색의 잔잔한 별무늬가 흩뿌려져 있었다. 아니 이런 귀여운 아이디어는 어떤 귀여운 분이 내신 걸까. 오빠에게 이야기 했더니 야광 같다고 말했다. 등대방문가능시간은 해지기 전에 끝나니까 방문객이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등대 베란다 바닥에 별을 뿌려져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바닥엔 별.

오빠는 바다쪽으로 가더니 캔커피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분위기 있는 재즈. 핸드폰 스피커가 좋은 건지 튜브 모양인 베란다의 구조 때문인지, 음악은 반대편에 있던 내 쪽까지 전망대 구석구석을 채웠다. 신기할 만큼 그 시간 그 장소에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어떤 음악인지 물으니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 가타카에서 우마 서먼과 에단 호크가 춤을 출 때 흐른 음악이라고 했다. 제목도, 뮤지션도 잘 모른다고. "음악 있으니까 됐어. 음악이 중요하지 이름이 중요한가." 이 사람은 나랑 참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부럽다. 음악이 끝날 때 즈음, 오빠는 '애인이랑 왔다면 좋았겠다'하는 마음이 든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며 징징댔다. 묵호 등대는 과연 그런 곳이었다. 없는 애인도 그리워지게 하는 곳.
우람이는 메모 중.
전체 메모의 2/3가 묵호등대에서..

우리가 계단을 내려올 때, 계단을 오르시던 아주머니 아저씨 커플이 계셨다. 달팽이 모양의 계단은 폭이 꽤 좁아서 두 사람이지나려면 서로 살짝 비켜 서야 했는데, 오빠는 아주머니에게 길을 비켜드리며 "안녕하세요."하고 습관처럼 인사를 건넸다. 답인사를 전혀 기대하지 않는, 혼잣말 같은 인사. 오빠 뒤에 있던 나는 그 말에서 사람을 향한 온기를 느꼈다. 아랫목 이불 속에 있던 사람은 못 느낄지도 모르지만 외출했다 돌아온 사람은 느꼈을만한, 딱 그 정도의 온기.

등대.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뭔가 외롭고, 쓸쓸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묵호 등대는 작은 마을에 둘러싸여 묵호 시내 전체를 내려다보는 큰 나무 같은 존재였다. 여름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일테고, 애인이랑 오면 또 전혀 다른 곳일테고, 어릴 때 왔다면 그저 '볼 거 없는 하얀 건물'이었을 수도 있는 묵호 등대. 건어물 가게 아저씨가 가르쳐주신 길에서 금방 보이지 않았다면 바로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르는데, 우리 마음을 알았는지 길을 찾는 내내 요만큼씩 얼굴을 보이며 얼른 오라고 손짓하던 등대. 그 등대의 손짓을 외면하지 않은 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 한 일 중 하나였다.

덧글

  • 푸른별빛 2008/12/06 11:31 # 답글

    묵호등대 다녀오셨네요- 전 군대 있을 때 일 후다닥 끝내고 당시 차인지 얼마 안된(....) 간부랑 같이 갔었는데 '여기 전역하고 꼭 한 번 와야지' 라고 마음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직까진 동해바다 보기 싫어서 안갔지만 한 번은 꼭 가야겠어요-

    아 참- 글씨 참 이쁘게 잘 쓰시네요 +_+
  • 우람이 2008/12/07 15:42 #

    등대가 다 원래 저렇게 예쁘고 관리가 잘 되어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등대 처음이었는데 참 좋았어요 ^^
  • 문대흥 2008/12/10 17:04 # 삭제 답글

    묵호이야기 카페에도 글 올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묵호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주는 감성에 동의만 하시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초면에 넘 많은 부탁을 했나요.....
  • 우람이 2008/12/10 18:39 #

    제가 까페에 직접 가입할 정도로 묵호랑 가까운 사람은 아닌 거 같구요 ^^;
    출처 밝히고 퍼가시는 건 환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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