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 on the floor :)

uram.egloos.com



6월 27일, 초현실 일상 everyday



뭔가 초현실적인 일주일이었다. 심하게 앓은 후 세 끼를 할머니방에서 먹은 날 할머니가 같이 자자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다음날 또 같이 자자고 하셔서 에라 모르겠다 또 가서 자는데 두 번째 날은 비가 왔다. 할머니 방은 바로 옆집이고 내 방과 마주닿아 있어서 거기서 거기지만 비오는 소리는 꽤 달랐다. 잠결에 할머니가 "할무이가 창문 닫아주께. 할무이랑 자니까 비오면 창문도 닫아주고 좋지?"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인형놀이 하는 여섯살짜리 여자아이 같았다.

이틀밤 할머니 옆에서 자고 나는 오랜만에 출근을 하고 할머니는 시골로 내려가셨는데 밤에 전화가 왔다. "오늘 하루도 기분 좋게 잘 지냈어?" 이런 질문을 할머니한테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할머니 없어도 할머니 방에서 자라시는데 그럴 이유가 없어서 집에서 잔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자고 일어나서 미루고 미룬 부인과 검진을 받으려고 아홉시에 맞춰 택시를 탔는데 이 아저씨 남부터미널 가자는데 마포대교 입구에서 강변북로 상행을 탄다. 왜 상행 타시냐니까 이 분 네비를 못 읽어서 버벅대고 있어. 합정에서 빠져나가 유턴을 하더니 또 강변북로 하행 입구를 못 찾고 헤매다가 기세도 당당하게 양화대교를 건너버리심. 올림픽대로로 가면 50%는 더 나올텐데. 첨부터 남산터널-반포대교 이런 식으로 시내로 가자고 말 할 걸 그랬다고 자책하는데 이쯤되니 말했어도 못 알아들으셨을 듯 하다. 나중엔 시간을 의식하셔서 너무 달리길래 늦어도 괜찮으니 안전하게 가달라고 기사님을 달래고,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니 예상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다. 요금을 깎아주신대서 어제 택시타고 출근하면서 나온 만큼만 내고, 검진을 받고, 다시 택시를 타고 오는데 이번에는 차가 심각하게 낡았고 차가 설 때마다 아저씨는 카톡 중. 좋은 기사님도 많이 만났지만 승객 마음 편하지 않게 하는 기사님도 많고나. 집에 들어와서 할머니가 챙겨주셨던 갈비국을 데워 먹고, 학교 앞에서 출장 때 필요한 여권사진을 찍고, 사진관 위층 까페에 올라왔다.

코피티암 커피가 이렇게 맛있었던가. 아 그러고보니 나 커피가 일주일 만이구나.

카야토스트와 커피를 앞에 두고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고생했다. 상이다. 중국 관광객이 없어 거리도 한산한데 열두시 전에라 더 조용한 까페에서 가로수 은행잎이 잘 보이는 자리에 오도커니. 과연 상이라고 할 만한 햇살, 자리, 간식, 그리고 아이스 커피.

초음파를 보는데 다 들어가기도 전에 혹이 너무 커서 배로 봐야겠다고 하셨다. 위에서 봤을 때 자궁 형태가 아예 안 보일 정도로 큰 혹이 있다고, 자궁 근종은 워낙 흔하고 다 수술로 제거할 필요도 없지만 이 정도는 아마 수술을 해야될 것 같다고, 아이를 낳은 사람이면 자궁을 들어내는 게 제일 간단한 방법인데 결혼 전이라 쉽게 그러자고는 못 한다고, 소견서를 써줄테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집에 와서 자궁 근종이 뭔지 검색하니 페이지 끝에 이런 말이 눈에 걸린다. [예방법: 특별한 예방법은 없다.]

어느 병원에 가야하나 고민을 많이 하다가 실장님이 추천해주신 회사 근처로 간 건데 병원과 선생님은 아주 괜찮았다. 불임 클리닉을 같이 해서 쌍쌍이 온 커플이 매우 많았다는 점과 그 병원 대기실에 앉아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임신을 도와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것만 빼면.

돌아오는 택시에서 애인에게 간단히 설명하는 문자를 보내고, 여자친구들 있는 채팅방에는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했다. 집에 와서 갈비국을 먹는데 잔뜩 겁을 먹은 애인에게 전화가 왔다. 애인을 겨우 진정시키고, 여권 사진을 찍기 위해 대충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까페에 앉아 토스트를 맛있게 먹고, 자두를 받으신 고객님 중 한 분이 "셧업 앤 테잌마이머니 그리고 자두주세요"라고 후기를 주셔서 한 번 웃고, 애들하고 채팅을 하다가 하지정맥류 수술해주신 쌤이 병원가보라고 했던 게 생각나서 병원에 전화를 했다. 엊그제 수술부위 체크하러 갔을 때도 아직도 병원 안 갔냐고 잔소리 하셔서 그 땐 참 듣기 싫었는데.

간호사와 통화를 하면서 궁금해하실까봐 전화드렸다고, 병원 가보라고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는데 갑자기 전혀 예상 못한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한테 이야기할 때도 아마 내가 엄마를 달래야 할텐데, 애인하고 통화할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왜 저 타이밍에 눈물이 쏟아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마감이 다가오고 있지.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일 때문에 넋놓고 우울해하고 있는 것보다는 일을 하는 편이 백배 낫다...고 애인을 달래니까 자기도 본인 일이면 그렇게 말할 것 같은데 내 일이라 저 말도 귀에 안 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내 일이니 저렇게 말하련다. 일하러 갑니다.

덧글

  • 쓴귤 2015/07/03 01:26 # 답글

    나 우람이랑 맛있는거 먹고 싶어요. 힘 되고, 보양 되고, 장염 안 걸리는 맛있는거 먹자. :)
  • 우람이 2015/07/04 20:39 #

    :D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