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 on the flo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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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스웨덴, 2016년 12월 리뷰 review

그러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모두에게 특별한 날을 시끌벅쩍하게 보내는 건 역시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을 굳이 확인하러 그 먼 길을 갔던 거였다. 내가 대견하고 멋있고 기특하기도 하고, 한심하고 대책없어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기도 하고.

한 해를 마감하고 내년을 맞이하는 두 개의 지름. 크레마 진작 살 걸.


방에 침대가 남는다는 친구의 메세지. 지난 여행에서 달러를 꽤 남겨둔지라 환전은 별도로 안 해도 되었고, 이 시기에 설마 표가 있겠어 했는데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가격의 표가 있었다. 북유럽 되게 먼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암스테르담 2시간 경유라서 10시간 비행-2시간 경유-2시간 비행이라 생각보다 시간도 별로 안 걸린다. 연락을 받은 건 월요일, 티켓은 수요일 새벽 12:50분 출발. 인터파크 항공에서 검색하고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예약. 대부분의 국내 예약 사이트는 3일 전까지만 티켓 구매가 가능했다. 티켓 사고 거의 바로 모바일 체크인.

실질적으로 화요일 밤 비행기였기 때문에 화요일 하루 준비 기간이 있었고 부랴부랴 합정 알라딘에 가서 크레마 카르타를 사왔다. 열린책장 앱 설치가 생각보다 복잡했지만 다 해갔고, 덕분에 여행 내내 책 편하게 읽었다. <예민해도 괜찮아>, <피부에 헛돈 쓰지 마라>, <커플>, <지푸라기 여자>,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 중 제일 조금 읽었지만 제일 위로가 되었던 책은 오지은의 <익숙한 새벽 세 시>, 제일 좋았던 건 <스토너>. <지푸라기 여자>만 별로였고 다 좋았다.

흔히 '책의 물성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나는 생각보다도 더 실용주의자였다. 그냥 책이 다 이북이 되었으면 좋겠다. 화면이 아이패드 미니 정도로 커졌으면 좋겠고.

비행기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화면을 보니
현재 고도와 남은 비행 거리가 거의 비슷했다.

와 비행기 정말 높이 나는구나.


알란도 공항에 도착해서 환전하면서 땡큐를 어떻게 말하냐고 물었더니 무표정하던 언니가 생긋 웃으며 "텃" 한다. 공기 반 소리 반 섞어야함; 안녕 스톡홀름.

외지인에게 따뜻한 도시는 아니었다. 불친절한 건 아닌데, 딱 거기까지. 사람들이 '남에게 무례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린 너에게 관심이 없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딱 한 번, 미안할 정도로 고마운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버스를 갈아타면서 버스 정류장 위치를 물으니 끌던 유모차를 남편에게 넘기고 자기를 따라 오라며 엘레베이터를 같이 타고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방향 확인까지 한 뒤에야 돌아간 여성이었데, 여행에서 만난 모든 스웨덴 사람 중 미소가 가장 환했고 영어가 가장 서툴렀다.

친구가 호텔 찾아가는 길을 검색하는 나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Everyone speaks English. Keep that in mind." 도착해보니 영어를 하는 게 너무 당연해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게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버스정류장에 데려다 준 그 분이 제일 도움이 많이 됐고 제일 고마웠다.

길에 다니는 사람의 80%는 커플이었던 거 같다. 혼자라서 위축되어야 하나, 생각까지 들었을 정도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커플이 제일 흔했다. 여자는 평범한 백인이구나 싶고 꾸민 느낌도 별로 없는데 남자들이 너무 잘생긴데다 머리를 너무나 예쁘게 스타일링하고 다녀서 정신이 혼미했다. 근데 손에는 다 유모차. 나만 잘생긴 남자랑 유모차 없어.. -_-

다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만난 연인과 결혼해서 일이년 안에 아이 낳고 사는 게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당연한 것 같았다. 현재에 저항할 이유가 별로 없는 사람들. 더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들. 북유럽. 선진국이라는 게 겨우 이런 건가.


어딜 봐도 예뻤고 너무 금방 익숙해져서 좀 억울했다.
더 오래 감탄하고 감동 받고 싶었는데.


가벼운 우울을 이삼주 정도 앓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냐고 물으면 그건 또 모르겠다. 다른 나라로 짧은 여행을 간다고 도망쳐지는 우울이면 걱정할 게 뭐 있겠나.

몸까지 안 좋아서 정말 오랜만에 감기를 앓았는데 출발할 때도 기침 감기가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라 비행기와 호텔 방에서 건조한 공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마스크 하고 자는 걸로 간단하게 해결했다. 감기로 무력한 몸이 회복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다 낫지도 않은 상태로 티켓을 끊은 건 참...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군.

오후 네시.

짐 대충 잘 챙겨 왔는데 이번 여행에서 제일 쓸모 없었던 거: 선글라스ㅋㅋ
2016 스노우볼. 장장 일주일짜리 스톡홀롬의 새해맞이 스윙 행사.

오랜만에 열심히 춤추면서 느낀 건 나 정말 사람 눈 잘 마주보는 편인데
'눈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잘생긴' 이라는 형용사가 필요했다.
내 느낌으로는 독일 사람이 제일 많았고 스웨덴 남자가 제일 잘생겼다.
말도 안 되게 잘생겼는데 다들 자기가 잘생긴 거 모름.
정말 신기했다.

"행복한 편이지만 굳이 살아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
"너처럼 섬에 사는 애들은 그런 고민을 하는 경우가 있더라."

섬에 살지 않는 사람도 있단 말인가.

혼고기 스웨덴편(..) 완벽한 미디움이었다.
근데 굽기가 완벽했다는 거 외에는 그다지 특징이 없었다.
전반적으로 '같은 재료를 어떻게든 더 맛있게 먹으려는 몸부림'에 관심이 없는 나라 같았다.
"언니, 우린 무엇을 위해 여행하는 걸까?"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건 우리 동네에 있다는 걸 깨닫기 위해 여행하나봐."
"정답이네."
좁은 골목을 지나면
노던라이츠 보러 갈까 고민하다 말았는데 핑크 노을이 져서 고맙.
다시 만나지 않기 때문에 보존되는 애정이 있었다.
근데 그건 굳이 다시 본 후에야 알게 되지.
단정한 캐시미어 머플러와 100퍼센트 맘에 드는 털모자를 샀다.
첫눈에 반한 스트라이프 잔과 얼그레이크림 루스티를 사면서
한국에서 그렇게 찾아 헤맨 차 스푼도 발견했다.
세상에 이걸 여기서 찾을 줄이야.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얼론 타임이 필요해서 재워 준 친구랑 빠이하고
다른 방을 얻어 나왔다. 컴컴하고 고요하다.

침대랑 이불 너무너무 신기했는데, 별로 크지도 두껍지도 않은데 완전 꿀잠을 불렀다.
우연히 행사를 진행하는 호텔방에도 가봤는데 같은 구조의 침구라 더 신기했고.
호텔 로비. 아침도 먹고 저녁엔 펍도 되고.
가구와 조명을 너무 잘 활용해서 저 공간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11시쯤 나왔더니 그나마 제일 밝았다.
"혼자야?"
"응. 완전히."
"나도 계속 같이 다니다가 오늘 완전히 혼자."
가만히 있었다면 하루 숙소비를 더 아꼈을테고
완전히 혼자인 두려움과 자유를 느낄 일도 없었겠지.
고독이 뭐 그렇게 좋다고 꾸역꾸역 쟁취하고야 마는지 모르겠다.
근데 같은 상황이 와도 또 그럴 거 같긴 해.


잘 읽던 책에서 남자가 여자의 욕실에 들어가 재사용하는 여성용 피임기구인 페서리에 구멍을 내면서 끝나는데 작가에대한 모든 애정이 싹 사라졌다. 미친놈아 피임 가지고 장난치지 마. 얘기 안 풀린다고 인물 죽이거나 출생의 비밀 꺼내는 거보다 더 재수없어. 책은 <커플> by 엠마뉘엘 베르네임. 이게 아니어도 이 작가는 <금요일 저녁>이 더 좋았다.

원하는 걸 늘 알지는 못하지만 싫은 건 언제나 분명해서 다행이야.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스토너>를 읽었는데 정 이유가 없으면
이런 책을 읽기 위해서라도 살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우울이 어디에서 왔을까 꽁꽁 싸매고 나가 광장 벤치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지금 모든 것이 다 너무 좋은 상태인데 어떻게 우울한 게 가능한 걸까. 의외로 쉽게 생각이 풀렸는데, 앞으로 이보다 더 좋아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같은 게 점점 커지는 거 같다. 딱히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건 없고, 나는 점점 더 나이를 먹을테고, 거의 모든 종류의 기회는 줄어들겠지. 지금 집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이보다 더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갈 일이 과연 있을까. 운동하고, 집안일 챙기고, 내 몸 챙기고, 귀찮지만 재미있는 부엌 살림 소꿉놀이도 지금처럼 여유롭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줄어들 일만 남았겠지. 풀어놓고 보니 저 걱정을 줄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이 우울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여행가면서 작정하고 노트북 두고 갔는데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나 여태 스톡홀름을 스톡홀'롬'으로 알고 있었다. 도착해서야 깨달음.

살까 말까 해서 산 건 다 잘 샀고, 안 사서 아쉬운 건 없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나서 인지 정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녀온 후, 시골에 내려가는 차에서 동생이 말했다. "누나가 갑자기 놀러가는 바람에 내가 편했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결혼을 앞두고 지인을 만날 일이 많았는데 누님은 잘 지내시냐는 안부 인사에 "나랑 송년회 겸 곱창전골 먹으러 가기로 해놓고 갑자기 스웨덴으로 놀러갔어." 한 마디로 안부 설명이 끝나더라는 거다. 동생의 말을 빌리면 누님이 여전히 멋지고 자유롭게 살고 있는 걸로 이해하더라고 했다. 그래. 나 멋지고 자유롭게 살게. 뭐가 멋진 건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심혈을 기울여 보관한 귤은 모두 무사했다. 당도 12 브릭스의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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