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 on the flo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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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피크림 생각 thoughts

혼자 살기 시작했지만 내 살림을 제대로 갖추기 전, 지금처럼 위생 때문에 머그보다 종이컵을 선호하기 전, 까페에 앉아있으면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시절, 아마도 이십대 초반, 그 즈음 어떤 머그에 담겨 나오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좋은 음악이나 깨끗한 화장실 때문에 까페를 고를 때도 있는 것처럼 머그 때문에 선호하는 까페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중 한 군데가 크리스피크림이었다.

시원시원하고 안정적으로 생긴 형태와 입에 닿는 부분이 유난히 도톰한 머그가 마음에 들었다. 도넛도 빠지지 않지. 여기 도넛을 맛보기 전까지는 내가 도넛을 안 좋아하는줄 알았다. 지금도 도넛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여기 오리지널만 한 두 개 먹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울에 있던 큰 지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이제 마음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지점은 부산역에 매장이라 부산에 다녀오는 길이면 삼십분 정도 미리 역에 도착해서 아메리카노에 오리지널 도넛 하나를 꼭꼭 먹고 온다.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 잠시 시간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내 주변의 시간만 멈춰있는 느낌의 행복.

오늘 무심코 돌아본 합정 메세나폴리스에 크리스피크림이 있었다. 마침 영화를 보기 전에 한 시간 정도 어디 들어가 있으려고 까페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들어갔고 마치 '늘 먹는 걸로요.'라고 말하듯이 "싱글세트 하나요."라고 주문했다. 머그가 너무 반가워서 판매용이 있는지 매장을 둘러보고 당장 하나 샀다. 팔천원. 이름도 귀엽게 '보타이 머그'였다. 자기네 로고가 보타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나보다.

커피 한 입에 도넛 한 입을 베어물고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언제부터 머그가 있다고 해도 종이컵에 달라고 했더라. 아니, 언제부터 대부분의 매장에서 머그를 원하냐고 묻지도 않고 음료를 종이컵에 주기 시작했더라. 요즘 바뀐 법 때문에 종이컵으로만 이용하던 매장은 음료를 머그에 주면 어색하던데, 여기는 반가운 머그에 담긴 커피를 보고 있으니 시간을 십오년 쯤 되돌린 기분이었다. 익숙한 머그. 익숙한 맛의 조합.

이제 이렇게 가까운 곳에 매장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올 해의 다이어트는 여기서 끝나는 건가 생각했지만 아마 부러 이걸 먹으러 오는 일은 자주 없을 거라는 걸 안다. 괜히 부산에 갈 때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이십분의 행복만 빼앗기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책상 한쪽에 위풍당당하게 자리잡은 머그를 볼 때마다 웃음이 나는 걸 보니 빼앗긴 게 아니라 바꾼 걸지도 모르겠다.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는 거리에 있다는 행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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