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으면서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장강명 작가가 여러 각도로 균형이 좋은 사람 같다는 점이었다. 독서 팟캐스트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완성한 에세이인데 그 팟캐스트를 들어본 적 없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들었다면 더 재미있을 수도?
+ 나는 친구들과 있으면 말길을 못알아듣는 바보 취급을 당하면서 직업은 말을 전달하는 사람인게 늘 미스테리였는데 장강명 작가가 읽고/쓰는 사람과 말하고/듣는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로 비슷한 고민을 적은 부분이 큰 도움이 되었다. 뼈를 맞는 기분으로 웃었달까. '진지충', '피씨충' 이라는 거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았는데 이걸 글과 말의 차이라는 차원으로 접근하니 생각 못해본 통찰이 있다. 술술 말하듯 쓴 에세이라 후루룩 읽힌다고만 생각했는데 내 고민을 많이 해결해줘서 신기한 책이다.
+ 작가를 초대해 팟캐스트를 진행할 때 '진행자의 예의'가 '정직한 서평'이라는 윤리에 앞선다고 생각한다는 말에 무릎을 쳤다. 나도 언제부턴가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한없이 사적일 수 있는 자유'보다 '좋은 건 한 번 더 짚어주고 단점은 너그럽게 보거나 언급하지 않는'것이 존립이 위태로워져만 가는 출판시장을 위해 내가 지킬 수 있는 예의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와 맞지 않는 책은 나의 독서 경험이 즐겁지 않았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않지만 되도록 순화해서 표현하고 나한테 유효하지 않았더라도 장점일 수 있는 부분을 인정한다. 싫고, 동의할 수 없고, 읽히지 않았으면 하는 책은 예외적으로 적개심을 표현하기도하지만 드물다.
+ 장강명 작가가 별로인 책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수식어는 '시시한'이다. '시시한 책'.
+ 깨닫고 보니 자신의 이상형은 책과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각각 탑 10%에 들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100명 중 한 명도 안 된다면서 지금 파트너와 맥주도 마시고 책 추천을 주고 받는다고 자랑을 하다니... 정부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홍보하고 싶다면 이런 책을 몰래 사서 사회 구석구석에 뿌려야 할텐데.
+ 올해의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추천인의 풀도 협소하지만 장강명 작가 본인이 접한 신간의 협소함 때문에 곤란하다는 내용을 읽고 아 이 고민을 다들 하는 구나, 싶었다. 추천을 요청하는 측이야 그 해 그 사람이 일정 수준의 독서량을 갖추었으리라 생각하고 추천 요청을 하겠지만 '개인적인 동기로 자유롭게 읽는 독서인'이라면 대표성과 편향성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구나.
+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 책의 단점은 아니고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지점인 것 같은데, 독자층을 넓히고 싶은 작가의 마음은 여러번 피력되었지만 책을 읽고싶어도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서 시작 못하는 사람에게 주는 구체적인 지침은 없다. 읽고 쓰는 걸 즐기는 사람은 새우 알러지처럼 날 때부터 정해져있는 걸 지도 모른다는 비유나,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실패하는 경험을 허락하라는 말이나 다 동의하는데, 성인이 된 후 주변에서 읽을 책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어도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작가님이 한 챕터 써주셨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만 그걸 포기하고 자기 안의 고민을 더 깊게 나눠준 쪽이 나는 더 좋긴 하다.
+ 나는 인세로 먹고살고 싶었다. 책을 잘 쓰면 책이 잘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중략)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사는 작가가 돼야 인세로 먹고살 만해진다.
+ 진지한 인간들을 공격하는 가장 쉽고도 파괴적인 방법은 그들의 핵심인 일관성을 역이용하는 거다. 읽고 쓰는 게 좋다면서 TV에는 왜 그렇게 자주 나와요? 개고기 먹지 말자면서 삼겹살은 왜 드세요? "그냥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곤란해하지 않을 이런 질문에 진지충들은 발목이 걸려 넘어진다.+ 나는 읽고 쓰듯이 말하고 들으려 하는 인간이었다. 텍스트라고 부르는 언어 기호에는 남들보다 훨씬 더 집중하면서, 비언어적 신호와 맥락으로 소통하는 법에는 무지했다. (중략) 어렸을 때에는 정말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를 만나면 꼭 시비를 걸었다. 그렇게 치열한 언어가 오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무의미한 말 주고받기로는 상대에 대한 나의 진지한 관심을 드러낼 수 없다고 여겼던 것 같다. 나 혼자 토론을 한다고 믿고 상대는 봉변을 당한다고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 말하고 듣는 사람 사이에서는 예의가 중요하다. 읽고 쓰는 사람 사이에서는 윤리가 중요하다.
+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드니 독서가 칭찬받아야 할 일이 되었고 한쪽에서는 책 읽기를 숙제로, 한쪽에서는 뽐낼 거리로 여기게 되었다.
+ 지금까지 1,500권 조금 넘게 읽었다. 지금 속도대로 56년 더 읽으면 - 그러면 난 꼭 100살이 되는데 - 죽기 전에 독서량 1만권을 채울 수도 있겠다. 8,500권을 더 읽을 수 있기보다는 앞으로 읽을 책 가운데 머리를 흔들고 마음을 휘어잡는 엄청난 책들이 많기를 바란다.
+ 전자책은 웹문서와 다르다. 그리고 둘의 큰 차이점 중 하나가 하이퍼링크가 있느냐 없느냐다. 전자책은 시작과 끝이 있는 단행본이며, 모든 문장과 문단에 맥락이 있다. 전자책을 볼 때 우리는 저자가 정한 순서에 따라 그 글줄을 차례로 받아들이고 다음 문장, 다음 문단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독서다. (중략)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종이책의 물성이 아니라 책이라는 오래된 매체와 그 매체를 제대로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라는 행위다.
+ 나는 책에서 글이 아닌 것에 대한 애정을 의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렇게 책의 변질에 저항하고 싶다. 그렇기에 돌고 돌아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내가 사인해서 보낸 책을 받는 분들은 그걸 중고 서점에 마음 편히 넘겨도 괜찮다.
+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애정과 보람을 느낄수록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의미를 묻고 따지는 것은 나의 고약한 버릇이고, 읽고 쓰는 세계 거주자들의 운명인 것 같다.
+ 어떤 책이 시대를 앞섰다면 그 작품은 당대에 환영을 받을 수 없다. 그게 바로 시대를 앞섰다는 말의 의미다.
+ 말하고 듣는 세계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이라는 한 인간, 한 인격을 판매해야 하는 것 같다.
+ 가끔은 내가 당대를 굉장히 못마땅해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세상이 너무 좋고 아름답고 옳은 방향으로 제대로 굴러간다고 보는 사람은 중요한 글은 못 쓸 것 같기 때문이다.
+ 별로 팔리지 않을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꾸역꾸역 쓴 책 원고가 있다. 그걸 쓰면서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는 걸 알았다.



덧글
이요 2021/01/11 11:20 # 답글
우람이 2021/01/12 2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