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 on the flo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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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휴가 일상 everyday

외부 일이 들어와서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가기로 했는데 확진자가 다녀가서 시설 임시 폐쇄로 일이 미뤄졌다. 예전 같으면 미련없이 휴가를 취소했을텐데 이번엔 그냥 놀고 싶어서 예정대로 쉬었다. 모를 땐 몰라서 그립지도 않은데 알면 알수록 고파질 맛, 별 이유 없는 평일 휴가의 맛.

아침에 출근할 때보다 삼십분 쯤 늦게 일어났다. 삶은 계란 하나를 아무 맛도 느끼지 않으면서 삼키고, 커피 물을 올리고, 옆 건물 공사 소리에 얼굴을 찌푸린채 빈백에 파묻혀 마이클 샌델의 <The case against perfection>을 한 챕터 읽었다. 원래 논문으로 나온 책인데 이상하게 이 책을 읽으면 눈 앞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든다. 현실의 가깝고 자잘한 문제들이 멀어지고, 삶과 우주와 정의처럼 멀리 있던 것들이 가까워지는 느낌. 

브런치를 먹으러 간 곳에서는 크게 실망했다. 동네 식당 중 유명해져서 주말에 가기 힘든 곳 몇 곳을 추려 심사숙고 끝에 고른 곳인데...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대충 먹고 원두를 사러 연남동으로 원정을 떠났다. 

원두를 사고 나오려는데 “커피는 뭘로 드릴까요?”하고 붙잡아서 한 잔 마시고 나왔다. 원두를 사면 커피를 한 잔 주는 곳이었지 참. 내가 내린 것과 맛을 비교해보려고 구매한 원두를 사용한 아메리카노를 골랐는데 그냥 그랬다. 이 집은 아이스 라떼가 맛있었지 참. 킨들이 있어서 <K is for Killer>를 두 챕터 읽었다. 호주에서 들고 온 책이니 십오년이 다 되어가는데 늘 1/3 지점까지 읽다 말았는데 아예 킨들로 구매하고 나니 조금씩이지만 진도가 나간다. 

커피를 마시고 주말에 친구가 좋다고 호들갑을 떤 근처 옷가게로 향했다. 정말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못 산 양말이 있다고 했는데 마침 내일이 친구 생일이다. 이만 오천원짜리 양말만 한 켤레 사서 나오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옷도 한아름 들고 나왔다. 오랜만에 인터넷 쇼핑이 아닌 즉석에서 입어보고 사는 옷에 돈을 쓰는 맛이 좋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옷 저옷 입어보다 PT가 3시인 게 생각나서 부랴부랴 집으로 걸어왔다. 아침부터 폴킴의 “느낌”과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여러 번 돌려 들었는데, 연남동을 오가는 걸음은 유튜브의 “하와이 딜리버리” 채널과 함께했다. 셔플로 틀어두면 오만 장르의 좋은 노래가 맥락없이 고루 나와서 좋다. 

PT를 가는 길에 수선집에 들러 새로 산 잠옷 시보리에 고무줄을 넣어달라고 맡겼다. 운동 끝나고 생각나면 챙겨오고, 아니면 내일 찾아야지 생각했다

오늘은 벤치프레스와 스모 데드리프트를 배웠다. 처음엔 20kg짜리 바벨로 자세를 배웠는데 스모 데드의 시작은 자기 무게라며 60kg로 올려주셨다. 그리고 곧 70kg. 근데 들렸다?! 그립 유지가 어려워서 트위스트 그립으로 했더니 그리 어렵지 않게 들렸다. 나 몇 키로까지 들 수 있을까? 

PT를 마치고 달리기를 하면서 <Criminal>의 아끼는 에피소드 “Just Mercy”를 다시 들었다. “It is not really mercy if you give it to the people who deserve it. Mercy is mercy when it is given to the undeserving.”

5km 달리기를 32:44. ‘5초만 줄였어도 신기록인데!’ 하고 나오면서 휴대폰을 보는데 좋아하는 동네 식당에서 봄 계절메뉴를 시작했다는 알람을 봤다. “오늘부터 입니까?” “오늘부터 시작입니다!” 집에 가서 씻고 나오면 5:30분 첫 손님으로 입장하기 좀 힘들 것 같고, 이 가게가 워낙 협소해서 한 끼 먹고 나오는 동안 밥 냄새가 잘 배는 곳이라 세수만 하고 먹으러 갔다. 긴타로정식(마라생선구이)에 야채 듬뿍, 중국당면 듬뿍. 내가 누구인가. 할머니께서 언젠가 “쟤가 먹은 건 개를 줘도 안 쳐다봐.”라는 말을 남기셨을 정도로 뼈든 가시든 남김없이 발라먹기로 유명한 사람 아닌가. 오늘 이거 먹을 운명이라 휴가 냈나보다 라고 속으로 외치며 생선을 발라먹었다. 요즘 중국당면 먹고 싶었는데 찍어 먹는 땅콩소스까지 직접 만드는 집에서 매콤한 양념에 익힌 중국당면을 소스에 찍어먹으니 너무너무 행복했다. 다 먹고 계산하고 나오는데 내 그릇을 본 사장님의 진심어린 코멘트. “어머나!” 

수선집이 식당 바로 옆이라 돌아오는 길에 잊지 않고 잠옷을 챙겨왔다. 양 손목과 발목에 고무줄을 넣는 작업, 7천원. 고무줄을 넉넉하게 넣어달라고 몇 번이나 힘주어 말했는데 조이지는 않지만 기대보다 답답하게 잡혀서 늘려달라고 해야하나 좀 고민이다.

저녁 먹은 걸 식단 앱에 넣어보니 800칼로리가 넘었다. 하지만 걷기도 많이 걷고 운동도 한 날이라 일일 기초대사량과 소모 칼로리를 고려하면 ‘참 잘했어요’ 카드가 나왔다. 쌤에게 오늘 식단을 보내니 한 끼에 너무 많이 먹는 건 좋지 않다며 ‘칭찬 스티커’ 대신 ‘격려 스티커’를 줬다.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칭찬 스티커’를 받았으니 오늘 같은 날은 안 받아도 괜찮다. 어차피 엿바꿔 먹을 수 있는 진짜 스티커도 아니다.

매콤한 걸 먹고 오니 달콤한 게 당겼는데 마침 집에 회사에서 받아온 칠성사이다 제로가 있어서 마셨다. 반 병 먼저 마시고, 씻고 나와서 개운한 상태로 나머지 반 병을 마셨다. 시보리에 고무줄을 넣은 잠옷을 입었다. 오늘은 왓챠도 넷플릭스도 보지 않았다. 일찍 잘 거다.

좋은 날이었다.  

탈락. 나는 이제 갈 일 없다.
내가 이렇게까지 삐진 이유는 내가 주문한 핫 샌드위치만 코울슬로 선택이 안되고 무조건 감자튀김이 나오는데
그게 메뉴판에 표기가 되어있지 않았고 납득할만한 설명도 없었기 때문.

쏘쏘.

첫 방문은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서서히 사랑에 빠진 곳. 

프로필에 “계절식을 준비해요”라고 적어 둔 키친 갈매기.


덧글

  • 이요 2021/03/18 11:25 # 답글

    2만5천원짜리 양말...와!!! 70Kg 바벨...와!!!! 키친 갈매기, 저장.
  • 우람이 2021/03/22 00:22 #

    키친 갈매기는 영업시간 변경될 때도 많고, 재료 떨어질 때도 많고, 공간도 협소하고, 잘 맞춰 가더라도 이런저런 제약이 많아섯 남에게 권하기가 늘 애매한데요... 혼자 평일에 오픈시간 맞춰 가서 서너번 먹어보고 매력을 알게 되었어요. 혹시 첫 방문에 실망하시더라도 고려하셔요 :)

    방문 전 인스타 체크 필수입니다 - @galmegi_kitchen
  • 샤론 2021/03/20 04:11 # 삭제 답글

    아니 보물지도가 업데이트되었군요 ㅋㅋㅋ
  • 우람이 2021/03/22 00:22 #

    소금집은 워낙 유명하고 사람 많고 북적북적이잖아요?! 아 전 이제 내려놓습니다....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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